서핑이라는 건 남 얘기인 줄 알았다.
식스팩 멋진 서퍼가 파도를 타며 배럴을 통과하는 모습이 연상되던 시절이었다.
서핑은 아무나 못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물놀이를 너무나도 좋아했는데 서핑은 유독 거리감이 있는 활동이었다.
사실 서핑을 본격적으로 해볼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2009년 호주 워홀하던 시절 골드코스트에 살아서 서퍼스 파라다이스가 가까웠을 때가 그 중 하나.
호주 워홀 시절에는 돈을 아껴써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니 외로워서 였겠지만 한국 형들하고 놀고 대만 태국 일본 덴마크 친구들하고 술마시며 당구치고 노는게 재밌었다.
지금의 나였다면 여행이나 현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핑을 처음 해본 곳이 춥디 추운 12월의 시애틀 바다에서 였다.
한 겨울 시애틀에서의 서핑이라... 23살의 나이가 가능하게 했던 것 같다. 지금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해야 되면 또 하겠지만)
바다에 빠질 때마다 뇌 속 세포하나하나가 쭈뼛하던 추위, 그리고 폐가 얼어 붙는다는 느낌. 겨울 바다에 빠지면 생존할 수 없다는 걸 처음 실감해본 때였다.
그래도 한번은 섰다. 수십 번 중에
지금 생각해보니 깨진 파도 위에서 열심히 팔을 휘저었더니 파도에 올라타졌고 그 순간의 느낌과 기분이 엄청났다.
그날의 첫 서핑 경험을 뒤로 하고 서핑을 잊고 살았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카메라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더라면 참 좋았을 것 같은 날이다. 이래서 남는 건 사진 뿐이라는 말이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