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야구] LG트윈스, 29년만의 통합 우승

MahAlOhana Life 2023. 11. 20.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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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전 가을 당신은 누구였습니까?
그리고 오늘 당신은 누구입니까!?


2023년 11월 13일 월요일 저녁,
나는 2002년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6차전 끝내기 홈런을 목격하며 리모컨을 집어던졌던 중학교 3학년이던 그때로 돌아가는 경험을 했다.
 
LG 트윈스가 우승을 했다. 29년 만에. 강산이 세 번이 변할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94년도에 무슨 일들이 있었고, 2023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소개된 매체나 블로그들이 많아 생략하겠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만 체감하면 될 것 같다.) 94년이었으면 태평양에서 받은 야구 용품을 잔뜩 가져다 주신 큰아버지 덕분에 태평양 팬이 될 뻔했던 기억은 있다. 그게 한국 시리즈 이후인지 플레이오프 때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때는 야구에 많은 관심이 없었다.
 
LG 팬이 된건 정말 너무 우연한 계기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사 간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LG 슈퍼마켓이 있었다(현 GS 슈퍼마켓) 언제 인지 모르겠지만 마트에서 LG트원스 어린이 회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어떤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린이 회원에 가입하고 싶었다. (야구 점퍼나 장비 들이 탐이 났던 것 같다.) 그 길로 2023년 만 36살인 지금까지 LG 트윈스의 팬이 되었다. 어린이 야구 캠프에 갈 정도로 LG 트윈스를 그리고 LG라는 그룹을 좋아하게 되었다. LG에 다니는 친구들 아빠, 그리고 무엇보다 당대 탑스타들이 나와 외치는 사랑해요 LG라는 광고를 친근하고 따뜻하게 느꼈던 것 같다. (이영애 누나, 배용준씨가 광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야구에 이끌려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한성대입구에서 잠실 야구장까지 혼자 다녀오기를 여러번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는 장충동 롤러 스케이트장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리틀야구단에 이끌려 짧지만 리틀 야구 선수 생활도 했었다. 당연히 야구를 하는 동안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고, 비교적 최근 까지도 야구계에서 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구타 문화만 없었다면 적어도 중학생 까지는 야구를 했지 않았을까 싶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리틀 야구 할때 참가했던 딱 한번의 대회에서 윤석민이 내가 유일하게 상대했던 투수였다고 들었다. (초록색 유니폼의 구리시는 유명했다.)
 
물론 96년 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야구를 사랑하고 LG 트윈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했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 시절 리틀야구를 그만두고 학교 운동장에서 짬뽕 같은 것은 즐겨했지만 그렇게 야구를 즐겨 보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컴퓨터 게임이나 어떻게 하면 여자아이들과 놀까 하는 고민을 했던 것 같다.(스타크래프트가 대단히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 PC방의 태동기, 그리고 사춘기? 한성대입구역 제네시스 PC방 한 시간에 2천 원이었던 시절. 그것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던.. 아련하고 그리운 시절)
 

 

그러다 월드컵으로 온 세상이 미친 2002년의 여름을 보내고, 정규시즌 4위로 마감한 LG 트윈스의 한국 시리즈 진출을 보게 된다. (참 희안하게 2002년 월드컵의 기억은 하나하나 기억 나고, 가까운 과거의 일 같은데, 야구를 생각하면 훨씬 더 먼 과거 같다.) 정규시즌을 4위로 마치고 꾸역꾸역 쥐어 짜내며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고, 6차전 후반 삼성과의 점수 차를 보며 7차전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모두가 알고 있듯이 야생마 이상훈 선수의 3점 홈런 허용. 바로 뒤이어 터진 끝내기 홈런. 나는 리모컨을 집어던졌고, 그게 2023년까지의 마지막 한국시리즈가 될 줄은 몰랐다.
 
그해 이후의 기억은, 김성근 감독님 해임 후 팬들의 본사 앞 시위, 캐넌 김재현 선수의 부상 그리고 SK로 이적, 그리고 충격적인 야생마 이상훈 선수의 트레이드. 암흑기에 들어가도 싼 일들이 벌어졌다. 여담이지만 난 김동수 선수가 삼성으로 이적할 때 좋아하는 팀을 옮겨야 하나 할 정도로 김동수 선수 그리고 포수라는 포지션을 좋아했는데, 선수를 좇아 다니면 나의 팀은 어디지? 그리고 난 서울 사람인데? 라는 생각을 하며 LG를 응원하기로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김동수 선수를 따라 삼성이나 현대를 좋아하게 되었다면 나의 팬으로서 경험은 어땠을까?
 
다시 야구를 즐겨 보기 시작한 것은 베이징 올림픽으로 야구 붐이 이루던 2008년이다. 2010년에는 동네 형들과 사회인 야구팀을 만들어 할 정도로 야구로 돌아가 즐기게 되었다. 지금도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1-2년이었던 것 같다. 야구를 직접 하게 되면서 야구에 더 빠지게 되었고 야구장도 자주 찾았다. 그러나 LG 트윈스의 우승은 너무 멀리 있었다. 창피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우승하는 팀의 팬이고 싶었다. 솔직히 야구 지면 그날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짜증이 날 때도 있다. 특히 에러나 실책성 플레이로 지는 경우.
 
2013년 정규 시즌을 2위로 마친 것을 시작으로 플레이오프에는 자주 오르며 기대감을 심어주던 팀이 드디어 몇일 전 한국 시리즈 우승을 했다. 2002년 한국 시리즈의 끝내기를 보며 금방 우승할 줄 알았는데 2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중3이던 학생이 대학도 졸업하고, 결혼하고, 3살짜리 아이가 생길 때까지의 시간. 우승하는 순간 무너졌다. 중 3 소년으로 돌아가 엉엉 울어버렸다. 승리의 기쁨과, 21년이란 시간, 세월의 야속함 등 많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경기에 진 아이를 위로하는 아빠와 아들 그림이 있는 LG 광고가 있다. 이번 한국 시리즈 우승의 광고는 그 아들이 커서 자신의 아이와 한국 시리즈 우승을 경험하는 그림인데, 그 그림을 보고도 눈물이 쏟아졌다. 내 이야기 같아서)
 
며칠이 지난 지금도 한국 시리즈 경기 하이라이트는 눈물 버튼이다. 울컥 울컥 하는 마음을 눌러야 할 정도다. 우승을 바라는 마음이 나하나뿐이었을까, KBO 구단 중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팀 중에 하나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 또는 더 한 마음이었을까. (유독 내가 좋아하던 팀들은 플레이오프와 인연이 없었다. 시애틀 매리너스, 그리고 LG 트윈스. 그래도 시애틀의 미식축구 팀이 슈퍼볼 우승을 해서 우승의 기분을 살짝 맛보긴 했지만 LG 트윈스의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너무 기쁜 일이다. 그래서 꼭 기록 하고 싶은 내용이다.
이제는 중3 리모컨을 던지던 학생을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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