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내려온 이야기를 하려면 작년 2022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작년 4~5월 드디어 한일 양국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코로나 상황도 조금 나아져서 일부 대상자에 한해 관광 비자 발급이 재개되었다. 입국 72시간 전 발급받은 음성확인서 제출 해야 하는 등 지금 생각하면 여전히 번거로운 과정들이 있었지만, 2년여 만에 다시 일본을 방문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자 행복이었다.
회사는 필수 인력만 출근하고 전일 재택근무 중이어서 팀에 양해를 구하고 약 한달 정도 오사카에서 재택근무를 했다.
당시 나는 회사 생활 및 서울 생활에 몇 가지 만족하지 못하는 점들이 있었는데 그것들로 인해 꽤나 무기력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1) 1시간 20분 정도 소요 되는 출퇴근 거리, 2) 팀 리더의 무능? 3) 고도화되고 세분화된 현대 직장에서의 업무 만족감? 내가 하는 일이 하찮게 느껴지는 느낌?
대략 위 3 가지 점들이 삶의 만족도를 끌어 내렸다.
그러던 중 일본에 가게 되었고, 오사카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면서 느낀 것들이 있다.
하늘이 참 에뻤다는 거, 그리고 사람들이 쫓기듯이 살고 있지 않다는 느낌. 그리고 일이라는 개념에 대해 결정적으로 뭔가 깨달음을 얻은 지점이 있었는데, 와이프와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던 중, "오빠 여기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있었어", "오빠 여기는 25년 된 곳이야."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였다.
그중 식당 한 곳에 가게 되었는데 큰 테이블 하나에 바에 네 자리 정도 앉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메뉴는 마스터가 제출음식 위주로 만들다 보니 주기적으로 변경되는 곳이었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 구글 지도에 나와 있는 시간 이후에 방문했는데, 식당의 마스터에게 구글 지도에 영업시간이 잘못 나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는데, "아 그랬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문의 전화를 했구나" 하는 정도의 반응이었다.
식사를 마치면서 뭔가 느낀점이 있었다. 크지 않은 가게, 온라인 리뷰에 매달리지 않고 25년 30년 그때그때 제철에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 이 사람들은 과연 식당을 열면서 테이블 회전율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등 그런 운영에 집중했을까?
한국에서는 어떤 비즈니스를 열 때 흔히 돈이 될 것 같으면 하려는 경향이 있다.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철학 같은 건 많이 부족하다. (부연설명하지 않겠다, 미국의 일식집 반은 한국 사람이나 중국사람이 운영하는 것 같다. 이탈리안 음식점을 프랑스 사람이 하면 어떨 것 같은가?)
인생도 그렇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인생에서 추구하는 점이 뭔지, 무엇을 하면서 내 시간을 쓰고 싶은지, 그런 고민을 하거나 그런 것에 도달하기 위한 삶의 과정을 사는 것이 아닌, 안정적인 직업, 고수익을 내는 직업. 등 그런 것들에만 집중해 있다 보니 직장 생활에 대한 만족도도 많이 떨어졌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프의 동네를 거닐며 봤던 25년 30년 된 식당들과 미니카 가게 등은 돈보다는 본인이 가치 있다고 믿는 것들을 행하며 살아온 흔적을 느끼게 해 줬고, 그 사람들의 인생이 불행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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